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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전준호 별세, 2006년 승률왕의 이른 작별

by 다이도도이슈 2026.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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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첫날, 야구계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006년 프로야구 승률왕으로 이름을 남긴 전준호 전 부천고 야구부 코치가 폐암과 간경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0세였습니다. 전준호의 별세 소식은 현역 시절을 함께했던 동료들뿐 아니라 2000년대 KBO리그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해 첫날 전해진 비보, 야구계의 깊은 애도

전준호는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왔고, 2025년 말부터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2026년 1월 1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전준호의 부고가 알려지자 야구계 곳곳에서는 “믿기지 않는다”, “너무 이르다”라는 반응과 함께 추모의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을 함께한 이들에게 전준호는 늘 성실하고 묵묵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야구 인생, 태평양 돌핀스 입단

전준호는 1975년 4월 10일,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천서흥초, 인천동산중, 동산고를 거치며 일찌감치 투수로 두각을 나타냈고, 1994년 태평양 돌핀스에 고졸 연고 자유계약 선수로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데뷔 초기부터 체격 조건이 좋은 우완 투수로 주목받은 전준호는 빠르게 1군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5년 시즌 막바지, 수원 삼성전에서 무실점 투구로 데뷔 첫 승을 거두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전성기를 지탱한 전천후 투수 전준호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재편된 이후, 전준호는 인천 연고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됐습니다. 현대 유니콘스가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 이른바 ‘왕조’로 불리던 시절 전준호는 화려한 에이스보다는 로테이션을 지켜주는 든든한 투수였습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를 채웠고, 기복이 있다는 평가 속에서도 경험과 경기 운영 능력으로 꾸준히 1군 마운드를 지켰습니다. 전준호는 언제나 “필요한 순간에 등판하는 투수”로 기억됩니다.

 

커리어 하이 시즌, 2006년 승률왕의 탄생

전준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해는 단연 2006년입니다.

시즌을 앞두고 체중 감량에 성공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린 전준호는 풀타임 선발로 규정 이닝을 소화했고, 30경기에 등판해 14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39라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승률 0.778로 류현진을 제치고 승률왕에 오르며, 전준호라는 이름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류현진의 데뷔 시즌이었던 만큼,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됩니다. 전준호는 숫자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 시즌을 만들어냈습니다.

 

해체 이후의 변화, 히어로즈와 SK에서 이어진 도전

현대 유니콘스 해체 이후 전준호의 선수 생활도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우리 서울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며 팀 재편 과정 속에서 베테랑 투수로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2010년에는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입단 테스트를 거쳐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고, 그해 9월 선발 등판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약 3년 만에 선발승을 거두며 노장의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전준호의 통산 기록과 상징적인 순간들

전준호는 2011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KBO리그 1군 통산 성적은 339경기 출전, 55승 47패, 9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4.50, 탈삼진 633개입니다.

또한 전준호는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경기 선발투수이자 마지막 패전투수라는 상징적인 기록도 함께 남겼습니다. 한 팀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한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기억됩니다.

 

‘대도’ 전준호와의 인연, 팬들에게 남은 이야기

외야수 전준호(별명 대도)와의 인연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두 전준호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오랜 시간 함께 뛰었고, 2009년 시즌 종료 후 나란히 팀을 떠났습니다. 이후 투수 전준호가 SK 와이번스에 합류했을 당시, 타자 전준호가 코치로 같은 팀에 몸담으며 다시 한 번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된 장면은 팬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은퇴 후에도 이어진 야구 사랑, 지도자 전준호

은퇴 이후 전준호는 야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2012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을 전했고, 이후 인터넷 중계 해설을 거쳐 부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엘론베이스볼랩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하며 아마추어 선수들과 유망주 육성에도 힘썼습니다. 선수 시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지도는 많은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빈소와 유가족, 마지막 가는 길

전준호의 빈소는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습니다.

발인은 1월 3일 오전 9시 30분이며,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입니다.

유가족으로는 어머니 전명자 씨, 형 전정호 씨, 그리고 두 딸 아름 씨와 아현 씨가 있습니다. 많은 야구인들이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전준호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기록으로 남은 이름, 기억으로 이어질 전준호

전준호의 야구 인생은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으로 설명됩니다.

현대 유니콘스 왕조의 구성원이었고, 2006년 승률왕이라는 분명한 이력을 남겼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후배들을 이끌었습니다.

향년 50세라는 이른 나이의 별세는 큰 아쉬움을 남기지만, 전준호라는 이름은 2000년대 KBO리그의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마운드 위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냈던 투수, 전준호. 그의 야구는 기록과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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